2019년 5월 30일(목)
어제 일찍 잠든 탓에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에 잠에서 깨어난다. 아이패드로 이런 저런 것들을 살펴 보다가 다시 잠이 든다.
창문 밖 밝은 기운이 다시 잠든 내 얼굴을 두드린다. 이제 아침인가보다 시계를 보니 아직 6시 전이다.
아침에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더 일찍 일어나야겠구나 생각한다.
어제는 2인실에 홀로 묵었다.
첫 날은 5인이 사용하는 도미토리에 묵었는데, 아마도 내 코고는 소리에 같은 방안에 계신 분들이 힘들었을 듯 하다.
걷옷을 걸치고 바깥으로 나가본다.
새벽 바다공기는 눅눅함과 상쾌함이 공존한다. 어차피 하루종일 맡을 내음인데 생각하며 다시 방으로 돌아온다.
방으로 돌아와서 어제의 사진을 보면서 기억을 떠올리며 제주라이딩 2일차의 기록을 적어내려간다. 하루의 기록을 남기는데 대략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듯 하다. 금방 쓰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사진을 보며 기억을 맞추고 글로 옮기는 일이 시간이 꽤 걸린다.
잠들기 전에 기록을 남기면 좋겠지만, 알딸딸하게 취하다 보면 글쓰기가 어렵다. 첫 날에 시도해 봤지만 세 줄 정도 적어 내려가다가 포기했다. 그 세 줄의 기록도 다음날 아침에 다시 고쳐 썼다.
(슬픈 소식을 전화로 전해 들었다. 어제 밤에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갑자기 먹먹함으로 가득찬다. 오늘은 추모의 마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라이딩 하기로 한다.)
2일차 기록을 마무리하고, 씻고 나설 채비를 한다.
지금 시간이 8시20분이니, 밥 먹고 출발하면 9시에는 출발할 수 있겠다.
물통에 물을 채우고 자전거에 짐을 매 달고 숙소 앞에서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출발한다.
숙소 바로 아래에 있는 식당에 자전거를 세우고 식당으로 들어섰다.
몸국과 순댓국, 고기국수 등을 파는 식당인데, 제주에 왔으니 몸국을 시켜본다.
아주머니가 몸국은 국에 말아먹지 말고 따로 떠 먹는 것이 더 맛있다고 알려주신다.
시키는대로 한다.
뜨거운 국물이 뱃속으로 들어오자 몸이 후끈해 지고 에너지가 완충된 듯한 느낌이다.
바닥에 가라앉아있는 고기들을 싹싹 다 찾아 먹었다.
바로 근처에 있는 쇠소깍인증센터에서 도장을 찍고 기념사진을 남긴다.
어제 여기와서 도장을 찍고 마무리를 할까 고민하다가, 지친 몸 상태에 바로 포기했다. 5분만 시간을 냈으면 올 수 있었던 거리였는데, 와서 마무리 했으면 더 의미 있었겠다라고 잠시 생각한다.
확실히 어제보다 자전거 패달구름이 편안하다. 오르막도 조금만 힘을 내면 오를 수 있는 수준의 오르막이고, 패달에 발만 올려도 자전거가 쓱쓱 앞으로 나아간다.
어제 묵은 게스트하우스는 생맥주가 있어 좋았지만, 조식과 커피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쓴 커피 한잔 생각이 간절하다.
약 1시간, 17km를 달리니 해안에 예쁜 카페 하나가 보인다
바로 자전거를 길 건너 카페 앞에 세우고, 안으로 들어가니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분주하게 주방을 정리하고 계신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하고 바로 화장실로 들어간다.
아침에 제대로 일을 보지 못했는데, 한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다 보니 뱃속에서 신호가 아주 제대로다.
화장실을 나와 머그잔에 그득히 담긴 커피를 갖고 바깥 테이블로 나간다.
허세 가득한 설정으로 사진 한장 남기고, 부족했던 10% 에너지를 커피로 충전한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 달린다.
달리는 중에 마음 아픈 생각으로 머리가 꽉 채워진다.
그 분을 위한 기도로 머리속을 꽉 채우고 해안 자전거길을 달린다.
풍경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기억에 제대로 남지는 않는다.
표선해변인증센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표지판을 봤지만, 이 역시 머리에 남지 않고 바로 휘발된다.
덕분에 표선해변인증센터는 도장을 남기지 못하고 지나치고 만다.
언제 지났는지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렸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이렇게 그 분에 대한 마지막 추억이 다시 한줄 남는구나.
표선해변인증센터를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고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고 가는 길, 라이딩 하기 편안한 길이지만 무언가의 허탈함에 조금씩 지쳐간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멀리서 성산일출봉의 작은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큰 일출봉이 저리 작게 보이는데, 언제 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친다.
“달리다 보면”
그래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눈 앞에 와 있겠지.
그랬다. 달리다 보니 점점 성산일출봉의 실루엣이 커져가고, 실루엣으로만 보였던 일출봉에 형형색색 땟깔이 입혀지기 시작한다.
오래 전 직장 사진동호회 멤버들과 함께한 제주도 출사에서,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일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그 때 촬영 포인트를 찾아본다. 어렵지 않게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그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니 사진동호회 멤버 중 은선이 반응한다. 그녀 역시 추억이 떠올랐나보다.
성산일출봉 부근에서 자전거길임을 표시하는 파란색 선이 자꾸 사라진다.
네이버지도를 띄워 확인하면서 가려다 보니 슬슬 짜증이 난다.
길을 잘 못 들어서 잠시 헤매는데, 뒤에서 버스 한대가 크락션을 크게 울리며 내 옆을 스쳐 지나간다.
깜짝 놀라 멍 하니 있다가 화가 치밀어 오른다.
쫒아가서 한바탕 하고 싶었으나, 자전거로 뒤따를 수 없는 속도로 사라져버린다. 사진이라도 찍어 놓을 것을. 난폭운전으로 신고할 것을.
겨우 겨우 자전거길을 다시 찾아 "일출봉인증센터"에서 도장을 찍고 바로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성산일출봉 자전거길에 대한 좋지 않은 이런 저런 기억이 이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반영된 듯 하다.
얼마나 갔을까, 반가운 카톡 메시지가 하나 들어온다.
이랜드에 같이 근무했던 동료이자 후배가 페이스북을 보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무려 스타벅스 음료 교환권과 함께.
달달하고 시원한 카페 음료가 또 다시 간절했던 마음이었던지라, 격한 감사의 메시지로 화답한다.
헌데, 검색을 해 보니 가까운 스타벅스는 방금 지나온 성산에 있다.
다시 성산으로 돌아가기는 싫고, 제주시에서 교환하기로 하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 달린다.
목적지까지는 대략 12~13km가 남았다.
넉넉잡고 50분이면 갈 거리, 이제는 좀 여유 있게 가보자 마음 먹는다.
천천히 달리면서, 지난 일정 사고 없이 달릴 수 있음에 감사하고, 청원의 기도에 응답해 주심에 감사하고, 가족과 주변 사람의 행복을 위해 내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알려 주십사 기도한다.
기도의 시작은 누군가의 행복을 위한 기도지만, 기도의 끝은 그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내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알려주십사 하는 내용으로 바뀐다.
결국 내가 변화해야 하고 나의 변화로 인해 주변이 변화할 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자꾸 잊는다.
눈 앞에 나타난 오르막에 이런 생각이 멎는다.
숨을 몰아쉬며 가파른 오르막을 조금 오르고 나니 멋진 경치가 펼쳐진다.
오늘 목적지는 “세화항” 이다.
게스트하우스는 따로 예약하지 않았다.
네이버에서 검색한 첫번째 게스트하우스로 향한다.
자전거를 세우고 1층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개 한마리가 요란하게 짖어댄다. 깜짝 놀라 나와서 문에 붙어 있는 번호로 전화를 하니, 오늘은 이미 방이 다 차서 없단다.
두 번째 “와락게스트하우스”라는 곳으로 향한다. 이곳 역시 노크를 해 봐도 아무도 없다.
전화로 사장님에게 묵을 수 있냐고 물으니, 자전거 들여놓고 쉬라고 하며 전화로 방을 배정해 주신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점심겸 저녁을 먹으러 나선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추천한 "한라산도야지"라는 곳에서 돼지갈비를 먹기로 했다. 2인분 이상 주문만 가능하다는 말에 “뭐 2인분이 얼마나 되겠어?” 라고 생각하며 생갈비와 양념갈비를 1인분씩 주문한다.
억!! 4인분 양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커다란 갈비 4대 중 3개를 해 치우고, 하나는 숙소로 싸 들고 들어와 사장님께 드렸다. 사장님이 “거기 양이 만만치 않죠? 그 식당이 현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당이라 인심이 넉넉해서 그렇다.”라고 이야기 하신다.
저녁으로 먹은 막걸리가 얼큰히 올라오고, 숙소에 돌아와 캔맥주를 두어개 마시고 나니 졸음에 몸이 무너진다.
왁자지껄 떠드는 게스트하우스 남녀 손님들 사이에서 어울리고도 싶었지만, 오늘 역시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하고 방으로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 한다.
3일차 이동경로 : 쇠소깍인증센터 - 표선해변인증센터(지나침) - 성산일출봉인증센터 - 세화항 (와락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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